 < 한국 대사관 행사에 日 현·전 총리 4명 깜짝 등장'수교 60년, >
수교 60년, 한국 대사관 행사에 日 현·전 총리 4명 깜짝 등장
전례 없는 일, 李 대통령 '日 중시'에 화답
내각 서열 2·3·4위 등 의원 100명 참석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일 뉴오타니호텔 도쿄에서 열린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축사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일 일본 도쿄에서 주일 한국대사관이 개최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일본과 한국은 출생률 저하, 인구 감소, 지방 활성화와 같은 공통 과제를 서로의 지혜와 지식을 공유해 함께 풀어가야 한다”며 “양국 협력의 지평을 더욱 넓히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교류의 바통을 확실하게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과 캐나다에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19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리셉션에서 인삿말하는
캐나다에서 열린 7국(G7) 정상 회의를 마치고 전날 귀국한 이시바 총리는 이날 도쿄 뉴오타니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에 깜짝 등장했다. 지난 16일 주한 일본 대사관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은 G7 정상 회의 참석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시바 총리는 외교 관계에서 서로 급을 맞추는 ‘상호주의’ 관례를 깨고 직접 참석해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기시다 후미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참석했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를 면담했다. 한국 대사관 행사에 일본 전현직 총리 4명이 방문하는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정상회담 다음날, 日내각 1~4위 참석해 “한일 함께해야”
또 내각 서열 2위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 장관, 3위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 4위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 나카타니 겐 방위상,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상, 아사오 게이이치로 환경상, 오카노 마사타카 국가안전보장국장 등 내각 인사들과 자민당·공명당·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일본공산당 등 국회의원 100여 명도 참석했다. 현장의 한 일본 참석자는 “천황 행사가 아닌데도 내각 서열 1~4위를 포함해 현직 장관 6명이 등장하는 행사는 처음 본다”며 “그만큼 일본 측이 한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했다.
전현직 일본 총리 4명이 주일 한국 대사관의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달 초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 중시 메시지’에 대한 화답이라는 게 일본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달 초만 해도 일본 정치권에선 야당 지도자 시절에 일본을 ‘적성 국가’라고 지칭한 이 대통령의 취임을 두고 한일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취임 닷새 만에 중국보다 앞서 일본과 먼저 통화하고,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면서 일본 측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것이다.
당초 일본 외무성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이시바 총리도 영상 메시지로 축하하는 방안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일본 대사관의 행사에는 이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는 전날 밤 10시에 귀국하고 이날도 여야 대표 회동을 진행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에도 한국 행사 참석을 결정했다. 리셉션 현장에서 만난 외교 관계자는 “한일 행사는 좋은 취지에도 항상 ‘기계적인 형평성’ 탓에 아슬아슬한데 이번엔 일본이 선뜻 이를 깨버렸다”고 했다. 10년 전 ‘50주년 기념행사’ 때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같은 날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두 손을 맞잡고 더 나은 미래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날 행사에서 이시바 총리는 “서로의 다양한 지혜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협력할 수 있는 분야, 나아가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분야도 수없이 있다”며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이 엄중해지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가 손잡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웃을 잘 알고 싶다는 게 인간적인 마음”이라며 “일본·한국이 서로 방문지 1위 국가인 것처럼, 젊은 세대의 자연스러운 교류는 밝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시바 총리와 함께 참석한 기시다·스가 전직 총리들은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를 총리로 만든 실세 정치인이다. 기시다 전 총리는 재직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12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전후 최악이라던 한일 관계를 정상화했다. 반면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맹우(盟友)인 스가 전 총리는 ‘노재팬(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단 한 차례도 양자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기시다 전 총리는 이날 “60년은 사람의 환갑 같은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한일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했다.
우리 측에선 한일의원연맹 주호영 회장, 김석기 부회장, 민홍철 간사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재정·김영배·서삼석 의원, 국민의힘 윤재옥·배현진·박정훈 의원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김태환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 이대순 한일협력위원회 위원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및 우리 동포와 기업인 등도 함께했다.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는 “60년간 양국 왕래는 처음 1만여 명에서 작년 1200만명을 넘었고, 교역 규모는 2억200만달러에서 772억달러(약 106조4000억원)로 350배나 늘었다”며 “한국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60년은 성장·성취·성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동경한국학교와 세이조고등학교의 한일 청소년 40여 명이 한국어로 부르는 ‘고향의 봄’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곧이어 한일 합창단은 “잊기 어려운 고향”이라는 일본 노래 ‘후루사토(고향이란 의미)’를 일본어로 불렀다. 10대 합창단의 뒷배경엔 1965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기본조약 비준 당시 쓰였던 한글 병풍이 있었다.
한일 관계의 다음 관건은 셔틀 외교 재개라는 관측이 나온다. 작년 9월 기시다 당시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이후, 한국의 답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방문 차례지만 이시바 총리가 먼저 서울에 오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게 우선인 이 대통령의 상황을 일본이 양해한다는 전제다. 오는 8월 말에서 9월 중순쯤 이시바가 서울에 온 뒤, 이 대통령이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 때 답방하는 방안이 한일 사이에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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